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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소식]조수현 선교사 암투병기
글쓴이: 충현뉴스
등록일: 2020-10-05 12:22:45
조회: 77
추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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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과 태풍 사이


태풍 마이삭이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 계속해서 빗방울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춤을 추고 있다. 창문을 때리며 자신의 존재를 일깨워 겁을 주었지만, 마이삭은 북으로 갔다고 한다. 문제는 다른 태풍의 예고이다. 선전포고를 마친 태풍 하이선! 마이삭, 하이선, 또 노을이라는 태풍이 줄줄이 한반도를 지난다고 하는 2020년 8월 말의 여름밤은 가을에 대한 설렘이 아니라 잔뜩 웅크림이다.
그 밤, 8월 28일 금요일, 나는 강렬한 진동을 겪었다. 번쩍이는 섬광 같은 찰나의 기억들이 모여 얼기설기 이룬 그 날의 기억… 기억의 시작은 아니, 끝은 내 힘으로 조절이 되지 않는 내 몸에 대한 저릿한 공포감과 ‘기억 뒤로 사라진 기억’이다. 그 기억되지 않는 시간에 뇌에서 경련이 일었고 생애 처음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향했다. 고개가 돌아가고 움직여지지 않는 1분 여의 시간 후에 필름이 끊긴 나와는 달리, 남편은 그 모든 것을 추스르느라 몸에서 열이 났다. 코로나19 검사로 격리되고 아무 기억이 없던 내게도 콧속을 깊이 파고든 강렬한 검사의 순간이 몸에 기억되어 있다. 검사 결과는 다행히 음성이었지만 응급실에서 2차 경련을 하고, 의사는 한 번 더 하면 중환자실로 보낼 거라고 했단다.
그 심각한 상황에서 내게 남은 기억은 나의 몸무게를 1kg 늘려 말하고, 키를 1cm 줄여 말하는 남동생에 대한 불만이었다. 피식 함께 웃고 다시 필름이 끊겼다. 꿈과 현실이 뒤죽박죽된 시간이 뭉뚱그려 이틀이 지나고 나는 점점 나로 돌아왔다. 뇌압을 떨어뜨리는 약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간절한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겠지. 남편도 코로나 음성이 나오고 내 곁에 올 수 있었다.
어느덧 나의 세상은 신경외과 병동이 되어 있었다. 머리에 배 포장 껍질 같은 것을 쓴 동료환자들이 서로를 짠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십수 년 전 내 모습과 닮은 건강한 간호사들이 나에게 묻는다. 여기는 어디이고, 너는 누구냐고.

뇌가 아프다. 뇌가 건강하다. 하는 말을 한 적이 있을까 할 정도로 뇌가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나에게 최악은 이미 작년 여름 지나갔다는 안일한 생각을 했었나 보다. 사실 태풍은 매년 새로 생기는 것을…
언제나 태풍과 태풍 사이인 것을. 몰라서 즐겼고, 너무 걱정하지 않고 지낸 것을 감사해야 하나. 오랜만에 TV를 많이 보게 되고, 뉴스에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가 나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을 경험한다. 당장 전공의 파업으로 병원이 한산하다. 주치의를 볼 수가 없다. 응급실을 통해 입원한 게 다행이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격상으로 병원도 을씨년스럽다. 어느 정도 조용한 분위기가 신경외과 병동에는 더 유익하리라고 좋게 생각하기로 한다. 태풍으로 시시각각 제보 영상이 보이고, 유리창을 단단히 보수하러 나갔던 60대 여성이 사망한 안타까운 소식이 들린다.
진행자는 이렇게 말을 잇는다. “태풍을 잘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태풍이 불 때 안전한 대피소에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두운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태풍이 불어치는 이 밤, 대피소에 있는 나 자신을 본다. 태풍이 얼마나 위력적인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태풍이 부는 순간 어디에 있느냐이다. 남편의 손을 찾아 잡는다. “기도해줘.” 대피소로 향한다. 그리고 맡긴다. 잠든다. 태풍이 가고 다른 태풍이 오기 전에 그렇게 밤이 지났다.

유방암 3기 말 2017년 1월, 암은 인도네시아에 살던 나를 서울로 데려왔고, 17년의 외국 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은 차근차근 회복의 길을 걸었다. 항암치료와 수술, 방사선, 표적 치료로 이어지는 긴 시간의 릴레이는 그래도 희망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스물넷에 결혼하여 미국으로 간 나는 선교학과 간호학을 새로 공부했고 남의 나라에서 그래도 당당하게 간호사로 일하며 다른 사람들을 돕고 자신도 돕는 뿌듯함에 빠지곤 했다.
물론 모든 것이 다 은혜였고, 감사한 일이었지만 치열하게 공부하고 성취하여 얻은 나의 몫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다. 선교학으로 대학원을 마치고, 간호학교를 졸업하며 정식 간호사가 되고 예쁜 딸을 낳아 일하는 모든 과정에서 남편과 나는 한 교회를 섬겼다.
영주권이 나오고 생활이 드디어 안정되어 갈 즈음 우리는 선교사로 파송 받아 인도네시아로 간다. 그곳에서 새로운 언어가 의미를 갖게 되고 낯설던 이름들이 삶으로 파고든다. 귀여운 아들을 그곳에서 선물 받았다. 어린 두 아이의 엄마로 그 땅에서 그렇게 또 잘 살았다. 열심히 엄마 노릇하려 했다. 늘 부족한 듯한 마음과 불안한 마음, 외로운 마음을 제대로 돌볼 틈 없이 그냥 하루하루 아이들이 크는 것에 약간의 집착을 얹어서 선교사로, 엄마로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아! 나를 더 돌보아야 했었는가!

모든 아픔이 좋은 결말은 아니다. 소설이나 드라마가 해피엔딩이길 바라는 마음은 사실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한 반증일지도 모른다.
작년 6월. “좋은 결말일 거야. 이제 6개월에 한 번씩 5년간 검사받으면 완치야.” 했던 내 기대가 무참하게 꺾이던 그 6월의 기억. 그때의 태풍은 ‘역대급’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폐와 간에 전이 소식을 알리며 유방암은 4기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다시 시작된 9번의 항암치료와 그로 인한 부작용. 6월에는 너무 힘들었는데, 7월, 8월이 되며 그 안에도 새로운 일상이 생기고 새로운 희망이 생기며 견딜 힘이 생겼다. 그저 버티는 것이 아니라 꿈꾸고 살아가는 삶을 산 것이다.
9차의 항암이 끝나고 표적 치료 항암제만 3주에 한 번씩 투여받으며 몸 상태는 잘 유지되는 것 같았다. 3개월에 한 번씩 하는 뼈 스캔과 CT 결과도 아직 암이 있지만, 더 커지지 않는 걸 보니 잘 조절되는 것 같다기에 그런 줄 알았다. 암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녀석이 아닌데, 내가 너무 얕잡아 본 걸까  
두려워 벌벌 떨며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잖은가  태풍이 올 수도 있다고 바닷가를 두려워한다면 평생 소금기 머금은 시원한 바닷바람, 파도 소리는 못 누리는 것일테니. 아, 살아있는 것은 그냥 태풍과 태풍 사이를 사는 것이다. 웅크리고 대피해 있을 시간이 필요하지만, 대피소에서 평생을 살 수는 없다. 태풍이 올 수 있어도 삶을 살아야 한다. 고비 고비를 넘어야 한다. 그렇게 고비가 없던 때가 사실 있었냔 말이다.

다행히 내가 힘든 고비를 넘기는 지금의 시점에 내 사랑하는 언니, 동생은 건강하다. 내가 뇌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는 날 언니의 유방조직검사결과가 양성으로 나왔다. 아, 다행이다. 남동생네서 내 두 보물을 데려다가 살뜰하게 챙겨주었다. 퇴원하자마자 집으로 소고기를 보내준 친구. 집을 반짝반짝 청소하고 냉장고를 가득 채워준 엄마. 커피믹스 봉지가 버려져 있는 쓰레기통을 보니, 몸을 움직이며 마음을 달랬을 엄마의 고단함과 간절함이 보인다. 열흘 만에 돌아온 집이 하루에 백만 원 넘는 풀 빌라보다 좋다. 매일 가던 공원에서의 산책이 유럽여행보다 낫다. 일상의 기쁨과 감사가 올라온다.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고, 100% 나의 맑은 정신이다. 이 사실 자체가 행복하고 다행이고 감사하다. 백 세 인생이 목표는 아니다. 그냥 살아있는 동안 맑은 정신으로 감사하며 살고 싶다. 보너스가 있다면 우리 아이들의 성장을 다 보고 싶다. 어떻게 청년의 얼굴과 마음으로 변해갈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마음에 큰 상처 주지 않고 싶은데, 그 바람 역시 이번 기회에 내려놓는다.
내가 상처 주고 말고 할 자격도 권한도 없다. 햇살이 비치면 햇살을 쪼이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는 정도가 나의 역할이다. 은혜의 계절은 오늘도 흐르고 있다. 그 계절 어딘가에서 그분이 부르면 가리라.
부르기 전에는 살리라. 감사로, 기쁨으로. 태풍과 태풍 사이... 인생이라 부르고 은혜라 기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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