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님 칼럼 - 실로암 못가

우리의 친구 장애인
글쓴이: 민종기목사
등록일: 2008-09-24 13:04:23
조회: 3,117
추천: 716
  
최근 한 조간신문에는 두 다리가 없는 장애인 박대운씨가 소개되었다. 연세대 신방과에 재학중인 그는 이전의 유럽횡단에 이어, 올해 7-8월 한국과 일본을 잇는 5,000 Km 종단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기간 동안 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며 무동력 윌체어로 일본 북부에서 시작하여 남부로 그리고 부산에서 광주를 거쳐 판문점으로 장정을 가진다. 정상인도 하기 힘든 먼 여행에는 일본과 한국의 건각 1001명씩이 참석하여 함께 달리며 우의와 친선을 다지게 될 것이라고 한다.  

         얼마 전 우리 나라를 방문한 일본의 한 장애인 오토다케 히로타다도 장애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몸통만 있고 손과 발이 거의 없다시피 한 사람이지만, 장애를 이기고 일본의 명문 와세다 대학 정치학과에 재학 중에 있으며, 그가 쓴 자서전 「오체불만족(五體不滿足)」은 이미 일본에서 30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비록 팔다리 없는 "불만족" 속에서 태어났으나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생을 "대만족" 속에 살아가는 고귀한 인간 승리를 볼 수 있다.  
이들의 경우처럼 장애의 극복은 본인의 피나는 노력과 의지의 결실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은 정상인을 능가하는 여러 배의 노력을 통하여 현재의 성취를 이룬 것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장애를 가지고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친구들은 하나님이 우리 사회에 주신 놀라운 선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성공적 장애인의 뒤에는 도움을 베푸는 수 없는 손길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부모의 긍정적인 수용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장애극복의 요소이다. 누구보다도 오토다케의 어머니의 경우는 특히 더 그러하였다. 출산 한 달만에 아들을 만난 그녀가 사지가 없는 아이를 처음 보면서 한 말은 시름이나 탄식이 아니라 기쁨의 외침이었다. "어머, 귀여운 우리 아기!" 위대한 어머니의 첫마디에 아들의 장애는 흉물스런 무엇이 아니라 "하나의 개성"이나 "신체적 특징"이었다. 아들의 장애는 어머니의 마음으로부터 극복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려 깊고 헌신적인 교사 또한 위대한 장애극복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복음으로 회심한 설리반 선생의 헌신적인 도움 없이 어떻게 위대한 헬렌 켈러를 생각할 수 있을까? 장애인은 열등한 사람이나 특별한 사람이 아닌 보통 사람이라고 가르치며, 보통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섞이도록 배려하신 다카기 선생님이 없이 어떻게 오토다케의 장애 극복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교회와 사회 또한 장애의 극복을 위해 공헌할 수 있다. 대부분의 장애는 고정된 것이 아니기에 환경의 변화를 통하여 극복이 가능하다. 이제 겨우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돕는 환경조성을 위해 투자를 시작하였다. 장애인을 위한 주차공간, 횡단보도의 턱을 깎아만든 곡면(curb-cut), 그리고 건물의 엘리베이터와 손잡이가 달린 장애자용 화장실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교회와 사회에서 장애인를 위한 시설 개량 및 의식 수준의 변화는 아직도 요원한 상태라 아니할 수 없다.    

         장애는 엄밀히 말해서 당사자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노령과 함께 장애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현대에는 장애를 가지고도 오랜 노년을 보내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 종류의 질병과 사고 또한 많은 장애를 남긴다. 그러므로 장애인을 백안시하고 모욕하는 것은 바로 미래의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자녀를 경멸하는 것이다. 장애가 우리 모두에게 높은 개연성을 가지고 발생될 수 있는 문제라면, 감상이나 자선으로 끝날 문제는 더욱 아니다. 심지어 장애의 극복은 오히려 배려의 차원을 넘어서 인권의 차원에서 접근되어야 할 문제이다.

         더구나 지상에서 말씀 사역과 함께 병자와 장애인을 고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우리들의 장애인을 위한 사역이 범상치 않은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 예수께서 소경과 앉은뱅이, 귀먹은 자와 벙어리 및 정신지체자를 치유하셨다면 지체장애인이나 정서장애자에 대한 처우는 교회의 포기할 수 없는 소명이다. 교회가 진정 예수님을 닮으려 한다면, 장애인을 비롯하여 여자와 어린이, 노인과 환자, 고아와 과부, 나그네와 이방인들에 대한 배려는 곧 교회의 영적 기상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장애인은 더 이상 욕설의 소재가 아니다. 동정이나 구제의 대상은 더욱 아니다. 그들은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며, 지체이다. 결국 그들은 우리의 친구로서 장애우(障碍友)인 것이다. 전 인구의 25 퍼센트가 신자인 반면 장애인 중의 신자가 2-3 퍼센트라는 통계는 교회가 가난한 자의 친구이기를 회피하는 또 다른 증거가 아닌지 마음 아플 뿐이다.

작성일: 2003/3/17(월)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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