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일꾼 성경공부 자료

3월 셋째 주
글쓴이: 교회사무실
등록일: 2015-03-13 12:5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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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14. 구역일꾼 훈련
영적 도약의 길(3) : 변화
마가복음 10:46-52

찬송 366장(구찬송 485장, 어두운 내 눈 밝히사)  

본문 속 눈먼 거지의 치유 이야기는 마가복음에서 소개되는 ‘마지막 치유 기적’ 사건입니다. 이례적으로 치유받은 사람의 이름도 거명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제자의 길(道)’에 있어서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말씀과 나눔
1. 여리고의 눈먼 거지는 예수님께 자비로운 치유를 간청합니다(46-48절).
1) 오늘 본문 속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과 사건의 배경은 무엇입니까(46절)?  
디매오의 아들인 눈먼 거지 ‘바디매오’가 등장한다. 사건의 배경 장소는 ‘여리고’다.

내러티브(이야기)를 이해하고 묵상하기 위해서는 이야기의 구성요소인 ‘인물, 사건,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의 공간적 배경은 ‘여리고’입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던 이곳은 예루살렘까지 오르막길로 한나절 정도 거리(약 35km)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리고에서 나오실 때 이 사건이 일어났다는 점은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8:27-10:52)을 끝내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이 임박해 있음을 시사해줍니다. 이 치유 사건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위에서 일어난 사건이며, 치유 기사로는 마지막 사건입니다. 등장인물 중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인물은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입니다(마가복음에서 치유 대상의 이름이 거명된 경우는 이곳이 유일하다) 그는 앞 못 보는 ‘맹인’이요 길 가에 앉아 구걸하던 ‘걸인’이었습니다. ‘맹인’이기에 성전과 성회에서 늘 소외되었고 ‘부’를 하나님이 복 주신 결과로 이해했던 당시 종교적 통념(10:23-26)에 비추어 볼 때 가장 비천하고 비참한, 지지리도 박복한 인생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는 마치 영원히 재건될 수 없는 ‘저주와 멸망의 상징’인 여리고처럼(수 6:26), 자기 힘으로는 결코 일어설 수 없는 저주 받은 인생이었습니다(49절).


바디매오 치유사건의 배경.
   1. 저주의 땅 여리고.
       ف] 여호수아 시대에 여리고가 정복되었다.  
       ق]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재건하는 자를 저주함(수 6:26).                
       ك]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며 두 아들을 잃다(왕상 16:34)
   2. 바디매오의 저주.
       ف] 맹인, 거지, 바디매오.
       ق] 길가에 앉아서 구걸하는 신세.


2) ‘길가’에 앉아있던 눈먼 거지는 어떻게 예수님을 부르며 자비를 구합니까(47,48절)?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거듭 부르며 자비를 구한다.

그는 길가에 앉아 있다가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듣고 멀리서 그분을 향해 소리를 질렀습니다. 마지막 기회(여리고 방문은 예루살렘 입성을 앞둔 마지막 행보였다)라는 걸 알기나 한 듯이 사력을 다해 예수님을 불렀고 사람들의 꾸지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표현은 구약 특히 시편에서 하나님을 향한 탄원의 전형이었습니다(시 4:1, 6:2 등). 그렇다면 그는 하나님께 구하는 자세로 예수님을 향해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부른 호칭(다윗의 자손)입니다(마가복음에서 처음 소개되고 있다). 그가 이 칭호의 의미를 바로 이해했으리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랍비’, ‘선지자’ 정도로 이해했던 것을 고려한다면 그의 고백은 베드로의 신앙고백(8:29)에 비견할 만합니다. 그가 긍휼을 구하며 기대한 것은 사람들이나 제자들이 기대하던 군사적 메시아로서의 ‘다윗의 후손’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치유하는 ‘다윗과 같은 목자’였습니다(시 34, 37장). 요컨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도 ‘다윗의 자손’(메시아)이라 부를 만큼, 그는 눈먼 거지였지만 영적인 귀와 눈은 밝았습니다. 육신의 눈은 밝아도 영혼의 눈은 어두웠던 제자들과는 달리 눈먼 거지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메시아로 알아볼 줄 아는 밝은 눈을 가졌습니다.

● 나눔 1  
‘나사렛 예수’(비천함)시란 말을 듣고도 거듭 ‘다윗의 자손’(메시아)이라 부를 만큼, 그는 눈먼 거지였지만 영안은 밝았습니다. 요즘 내 영안은 어떻습니까? 또 영적인 가청(可聽)과 시청(視聽) 범위를 방해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의 영적인 눈은 어떠합니까
   1. 눈은 보이지 않지만 예수님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는 바디매오.
       ف] 나사렛 예수를 “다윗의 자손” 즉 메시야라고 부름.
       ق]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마 20:31).                        
   2. 영적인 눈과 귀를 멀게 하는 것.
       ف] 성경 묵상과 기도에 힘쓰지 않는다. 공용어에 대한 무관심.
       ق] 이 세상의 일과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것(마 6:23-24).          
       ك] 바쁘게 진행되는 삶으로 여가를 상실함.



2. 치유를 통해 ‘길가’에 있던 그가 ‘길 위’의 사람으로 변화됩니다(49-52절).
1) 소원을 묻는 예수님의 질문에 그는 어떻게 대답합니까(51절)?
예수님께 보기를 원한다고 간청한다.

예수님은 그의 절박한 호소에 응답하여 그를 부르십니다. 사람들은 거추장스럽다고 그를 홀대했지만 예수님은 후대하십니다. 예수님의 긍휼 어린 부름에 그는 자신이 가진 재산의 전부인 겉옷을 ‘내버리고’ 예수님께 달려왔습니다. 재물을 버리지 못해 예수님의 부름을 거절했던 부자 청년(10:22)과 대조적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버리고 달려온 그에게 소원을 물으셨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10:36, 51). 눈먼 거지는 세속적인 지위와 영광을 구하던 제자들(10:37)과 달리, “보기를 원합니다”라고 간청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그의 확고한 믿음만큼이나 그의 요청은 단순하고 솔직하고 거침없었습니다. 가진 것이라곤 겉옷이 전부였지만 그는 세속적인 지위와 은금을 구하지 않고 자신의 고통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시력 회복을 구합니다. “보기를 원합니다”(아나블레포)라는 말은 ‘처음으로 시력을 얻는다’는 의미나(요 9:11) ‘잃어버렸던 시력을 되찾는다’는 의미로도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문맥(52절)이나 병행본문(마 20:33, 34)을 고려해 볼 때, 바디매오의 치유는 단순히 육적인 치유(개안)만 아니라 영적인 치유(영안)까지 포함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2) 치유를 받아 밝아진 그는 어떻게 반응합니까(52절)?
눈이 밝아지자 길에서 예수를 따른다.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그의 ‘눈뜸’은 ‘예수 따름’으로 이어졌습니다. “가라”는 예수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바디매오는 육의 눈이 열리자 즉시 ‘길’에서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여기에서 ‘따르다’와 ‘길’은 모두 ‘제자도’를 나타내는데, 이것은 그가 ‘예수의 제자’가 되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동행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는 ‘잠잠 하라’는 사람들의 꾸짖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님의 긍휼과 구원을 호소했고, 예수님의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 유일한 재산이자 생계수단인 겉옷마저 내버리고(마가복음에서 ‘내버림’은 제자의 삶을 위한 중요한 조건으로 제시된다. 1:12, 20 10:17-22, 28-30) 예수님께 달려갔으며, 눈이 밝아진 이후에는 수난의 길마저 마다하지 않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이처럼 마가복음은 열두 제자가 아니라 이 바디매오를 예수님이 말씀하신 참 제자의 전형-“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8:34)-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디매오의 급진적인 변화.
   1. 구걸하던 길가에서 예수를 따르는 길 안으로 들어옴.
       ف] 신앙의 변화: 예수에 대한 지식에서 체험을 가지다.
       ق] 신분의 변화: 거지에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다.
       ك] 행동의 변화: 그리스도를 믿는 상황에서 따르는 자가 되다.
   2. 그의 변화를 일으키는 뇌관(percussion).
       ف] 듣고 소리지르다. 의지의 표현.
       ق] 저항 및 거절: a. 많은 사람들. b. 잠잠하라 꾸짖음.
       ك] 더욱 소리 지름.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 나눔2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36,51절)는 동일한 질문에 제자들과 맹인의 대답은 달랐습니다. 진정으로 눈먼 사람과 눈뜬 사람이 누구인지 드러납니다. 주께서 소원을 물으실 때 어떻게 대답하렵니까? 과연 ‘제자의 길’이나 ‘하나님 나라’와 어울리는 소원입니까?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36, 51)는 질문에 대답은 무엇입니까?
   1. 나를 위한 간구.                                                           
       ف] 건강을 주시옵소서. 2] 자녀들에게 직장을 주소서. 3] 자녀에게 결혼하게 하소서.
   2. 교회를 위한 간구.
       ف] 충현동산에 은혜를 주소서. 2] 태신자를 초청하게 하소서. 3] 부흥을 주소서.
       ل] 이슬람 선교사를 주소서. 5] 선교관(사랑방)을 헌당하게 하소서.


● 나눔 3  
가시적인 변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더 깊은 내면의 변화일 것입니다. 주님의 부름과 만남을 통해 외적으로, 내적으로 내게 일어난 변화에 대해 나눠볼까요(삶의 조건이나 환경, 관계, 인격이나 성품, 가치관 등)?


주님을 만나서 일어나게 된 변화는 무엇입니까?
   1. 나에 대한 인식의 전환.
   2. 주님과 연결시켜서 세상을 생각하게 됨.
   3.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생각의 확장.



구역일꾼의 리더십: 바디매오의 인생을 바꾸는 믿음과 열정.  
   1. 목표를 향하여 집중하라(the principle of massive concentration).
   2. 장애물과 방해물을 제거하라(the principle of right repudiation).
   3. 부르짖어, 간절하게 기도하라(the principle of sincere prayer).
   4. 구하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라(the principle of clear communication).
   5. 인생의 행로를 바르게 투자하라(the principle of appropriate investment).



함께 기도
주님만이 제 삶의 이유와 목적과 동력임을 알도록 어두운 제 눈을 밝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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