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일꾼 성경공부 자료

‘실리를 위해 진리를 버린’ 비겁(卑怯)
글쓴이: 교회사무실
등록일: 2019-04-12 11:29:15
조회: 115
추천: 38
  
구역일꾼 훈련(2019. 4. 13)

4월 셋째주 그룹큐티나눔
Quiet Time Sharing


‘실리를 위해 진리를 버린’ 비겁(卑怯)
마태복음 27:11-26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만왕의 왕 내 주께서(찬송 151장), 말씀하시면(복음성가)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봅시다.

총독 빌라도가 무죄한 예수님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장면입니다. 밤새 예수를 심문한 종교권력자들은 거짓을 지어 고소했고, 예수님은 거짓 증언 앞에서 침묵했으며, 무리는 권력자들에게 매수당해 무죄한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라고 아우성쳤고, 빌라도는 실리(정치적 입지)를 위해 진리를 외면합니다. 누구든 자신이 선택한 대로 자기 운명을 맞이할 것입니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예수님은 산헤드린의 고발이나 총독의 심문에 침묵으로 일관하십니다(11-14절).
1) 총독 빌라도의 추궁은 어떤 질문에서 시작합니까(11절)?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질문한다.
산헤드린 공회의는 밤새 예수를 심문했다(1절). 죄목은 신성모독죄였다. 원래 중형을 선고한 경우는 하루가 지난 다음 날 공회의 다른 원로들에 의해 최종심의를 받아야 하지만 이들은 예수를 죽이기로 결의하고 곧바로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를 넘겨준다. 총독은 예수에게 “유대인의 왕이냐?”고 묻는다. ‘메시아’(그리스도, 22절)가 종교적 칭호라면 ‘왕’은 정치적 칭호다. 총독이 이렇게 물은 것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의 죄목을 그런 식으로 고발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말한 종교적인 죄목이 아니라 ‘유대인의 왕’이라는 정치적인 죄목으로 고발했다. 그래야 예수에게 민란과 반란을 주도하는 정치범의 죄를 덮어씌울 수 있기 때문이다.

2) 빌라도가 크게 당황하며 놀란 이유는 무엇입니까(14절)?
종교지도자들의 숱한 고발에도 끝까지 침묵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놀란다.  
예수가 정치범인지 확신하고 싶었지만 총독의 추궁에 예수님은 뜻밖에도 긍정적인 대답(“네 대답이 옳다”)을 하신다. 하지만 이것은 유보적 긍정이다. 빌라도가 생각한 것처럼 자신은 로마의 압제에서 유대를 해방시키려는 정치적인 유대인의 왕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관련한 종교 지도자들의 다양한 비난과 거짓 증언에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으신다. 쏟아지는 증언들에 대해 구차하게 변호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묵비권의 행사가 아니다. 이사야 53:7의 성취를 염두에 둔 행위다. 예수님은 적극적으로 진실을 규명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심으로써 유월절 어린 양으로 죽는(사 53:8) 자신의 사명에 순종하신 것이다. 빌라도는 자기방어를 하지 않는 매우 이례적인 사람이라고 여겨 놀랐고, 더 나아가 거짓 기소에 대해 자기변호를 하지 않는 것에 감명 받은 것처럼 보인다(23절).  

나눔1   침묵은 발화(發話)만큼이나 강력한 언어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불리한 고소와 증언에 침묵함으로써 하나님께 순종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어려움으로 알고, 적극적으로 감당해야 할 내게 맡기신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2.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께 죄가 없음을 알고도 십자가형에 처합니다(15-26절).
1) 유대 당국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18절)?
시기심 때문이다.
예수의 유죄를 확신하지 못한 빌라도는 자신이 직접 예수의 무죄를 선고해 유대 지도자들의 미움을 사기보다 유월절(전날)에 죄수를 석방하는 사면을 이용하여 예수를 풀어주려고 했다. 그래서 ‘예수와 바라바’ 중에서 석방할 사람을 정하게 했다. 하지만 그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백성의 선택은 예수가 아니라 바라바였기 때문이다. 바라바는 아람어로 ‘아버지의 아들’이란 뜻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아닌 사람의 아들 바라바를 선택한다. 빌라도는 여기서 저들이 예수를 죽이려 한 이유를 알게 된다. 그것은 ‘시기’였다. 예수가 정치범이 아니라 종교 지도자들의 시기심의 희생물인 것을 알게 된다. 신성모독죄는 명분이었을 뿐 예수는 종교 권력자들의 시기심에 의해 죽음으로 몰린 것이다. 그 시기심이 하나님의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2) 무리를 충동하여 예수님을 넘기려는 종교지도자들과 대조되는 인물이 소개됩니다. 누구입니까(19, 20절)?
총독 빌라도의 아내다.
예수의 무고함을 다시 한 번 증거 하는 사건이다. 그 중심에 총독 빌라도의 아내가 있다. 마태는 앞서 빌라도의 판단을 통해 무고한 예수가 유대 종교 권력자들의 시기에 의해 사형으로 몰리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번에는 빌라도 아내의 꿈을 통해서다. 총독의 아내에 대한 기록은 마태복음에만 나온다. 마태복음에서 ‘꿈’은 여러 차례 하나님의 중요한 계시의 수단으로 나타난다(1:20 2:12, 19, 22). 그 여인은 꿈을 통해 예수가 ‘옳은 사람’(의로운 사람)임을 알았고 남편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며 “그 사람에게 상관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처럼 ‘이방인’ 빌라도의 아내는 꿈을 통해 예수께서 옳은 사람임을 깨달을 수 있는 영안이 열려 있었지만 유대 지도자들은 많은 예언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예언들이 가리키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죽이는 데 앞장선 영적 맹인들이었다.

3) 예수님께 죄가 없음을 알고도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준 이유는 무엇입니까(24절)?
민란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약해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예수를 처형할 명분을 찾아내지 못한 총독은 처형할 이유를 다시 묻지만(23절)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대답만 반복한다. 거짓 메시아로 판명된 자들의 운명은 십자가에 달리는 것이기에, 구원자를 기대하고 기다렸던 군중은 구원자를 죽이라고 요구한다. 총독은 예수의 죽음에 자신이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의미로 손을 씻는데, 이러한 의식은 유대 관습이었다(신 21:6-7 시 26:6). 이를 통해 빌라도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유대 백성에게 떠넘긴다. 총독은 예수가 정치범이 아니라 종교적 시기심의 희생물인 것을 알고도, 불길한 꿈을 꾼 아내의 만류에도 무죄한 예수를 십자가에 내준다. 그는 로마 당국도 두려웠고 유대인들도 두려웠기에 옳은 사람인 줄 알면서도 풀어주지 않고 사형을 언도한다. 그는 비겁했다. 아니 악했다.

나눔2   ‘탐욕’에 눈멀어(26:15) 스승을 넘겨준 유다와, 예수를 ‘시기’하여 빌라도에게 넘겨준 유대 당국자들과, ‘권력’을 위하여 무죄한 예수를 십자가에 넘겨준 빌라도는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요즘 내 행동의 동기에는 시기와 탐욕이 없습니까, 또 내가 살기 위해 진리(진실)를 외면한 일은 없습니까?  

나눔3   사도들은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내준 것은 하나님이셨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사도행전 2:23과 로마서 8:32을 찾아서 함께 읽어봅시다. 이 사랑이면 족하지 않습니까? 내 인생에 베푸신 하나님의 과분한 사랑의 증거들을 나눠봅시다.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_ 세상이 정죄하지 못한 예수님처럼, 저도 세상 앞에 흠 없는 자로 살게 하소서.
공동체_ 죄인 줄 알면서 죄를 짓거나 묵인하는 영적 무사안일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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