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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단상]3.1 독립운동과 한국교회
글쓴이: 충현뉴스
등록일: 2019-02-28 09:14:47
조회: 106
추천: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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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3.1 독립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고등학교 때에 교과서에 실렸던 ‘기미독립선언서’를 원문과 현대어로 각각 읽어보았다.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이렇게 시작하는 선언서는 당시의 국제상황과 동양의 국제정치를 관통하여 파악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민족국가 확립이라는 간절하고 긴급한 사명을 명쾌하게 표현하고 있다.

글을 조금 써본 사람이라면, 이 선언문은 역사의 명문(名文)이라는 사실을 곧 느끼게 된다. 길지 않지만 지극히 감동적인 글이다.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보다도 민족의 미래를 위한 큰 뜻에 사로잡혀 광복으로 나아가려는 선조들의 시원하고도 훌륭한 의사표현이다. 독립선언서나 공약 3장은 깊은 애국심과 어우러져, 우리 마음에 결단의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민족의 긍지와 당당함이 배어나오며, 선조들의 강력한 독립을 향한 다짐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3.1 독립선언과 함께 일어난 3.1 독립운동은 우리 민족만이 아니라 한국 초대교회에게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놀라운 기회였다. 당시 교회는 어떠한 종파보다도 적극적으로 시대와 민족의 문제를 위하여 투신하였다. 전체 2천만 인구의 1.5~1.7%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기독교인들이 천도교나 불교나 기타 종단의 사람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석한 것은 참으로 교회사 속에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885년 부활절에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들어온 이래, 교회는 나라를 사랑하고 왕에게 충성하는 애국충군(愛國忠君)의 교회였다. 조선의 왕 고종이 죽는 것을 본 이후, 교회는 제국주의 세력에 저항하는 교회가 되었다. 개척된 지 30여년이 된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반봉건 사회개혁운동”과 “반외세 자주독립운동”을 실천한 교회가 되었다.  

3.1 독립만세운동에도 교회는 분연히 앞장섰다. 독립선언서의 서명자 33인 중 16인이 기독교인이었으며, 거사 준비과정의 중심인물 48인 가운데 24명이 기독교인이었다. 이 독립운동에서 한국 개신교회는 중대한 역사적 사명을 자각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힘차게 행동하였다는 사실을 여러 면에서 발견할 수 있다.

3.1절 거사 이후에 이어진 독립운동에서도 각 지방에서 시민을 동원하고 선언서를 배포한 중심 장소 중의 하나가 교회당이었다. 독립만세 운동의 중심에 선 사람들이 교인들이었다는 사실은 일경에 체포된 사람들의 숫자에도 나타난다. 1919년 3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의 수감자 9,059명 중 기독교 신자는 21.9%, 천도교 15.1%, 불교 1.2, 유교 0.6, 천주교 0.6, 기타 0.1 그리고 무종교가 60.5%이었다. 6월 30일까지 투옥된 신자는 2,190명으로서 유교나 불교 및 천도교 신자들을 합한 1,556명보다도 훨씬 많았으며, 교역자도 151명으로 천도교 직원 72명을 능가하였다. 교회는 결국 애국의 선봉에 서서 민족정기의 온상이 되었음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한국교회가 사회 속에서 3.1 독립운동의 지도적이고 지속적인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첫째로 그들이 가진 예민한 문제의식과 역사의식 때문이다. 당시의 교회는 세계를 향하여 열려있었으며, 선교사를 통해 한반도와 세계정세를 파악하고 있었던 가장 개화된 공동체였다. 우리 민족이 일제의 식민 지배를 당한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렇지만, 일본이 기독교를 전해준 것이 아니라, 서방 국가가 우리에게 기독교와 서양의 문물을 전해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는 선교사를 통하여 시작된 교회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부터 제국주의의 앞잡이나 구조적인 적대세력이 아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선교사는 개화와 독립의 은인이 되었다.

둘째로, 당시의 개신교회는 강력한 사회적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이는 한국교회가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의 기반을 확인하고, 민족의 자결과 평등, 그리고 민족국가의 건설이라는 시대의 요청에 유기적으로 응답하는 책임 있는 공동체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라를 상실한 암울한 시대 속에서 개화와 독립을 지향하는 교회는 곧 애국자들의 집단이 되었다. 서재필, 안창호, 이승만, 김구, 김규식, 이상재 등 거의 모든 민족지도자들은 교회의 아들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회는 민족의 존망이 불투명한 시점에서, 하나님 사랑과 나라 사랑을 구태여 구별하지 않았다.

개별 교회에 대한 과도한 강조로 거시적인 안목이 결여되고 공적 신앙(public faith)이 쇠퇴한 현재의 교회 상황 속에서, 3.1 독립운동 당시에 한국의 초대교회가 보여준 행동은 우리의 높은 이상이 되어야 하며, 되새겨야 할 중요한 역사적 공헌의 전범(典範)이다.
3.1 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하나님 사랑과 민족 사랑의 열정으로 단장된 한국교회가 다시 한 번 사회와 세계의 등불로 찬연히 빛나게 되기를 기도한다.

민종기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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